뱅가드 2014. 7. 2. 03:12

나오키+카무이 / 용 소년과 인간 소년 AU


* 쓰고 싶은 부분만 써서 중간중간 끊김.

* 설정에 대한 보충설명: 

- 용과 인간의 혼혈인 나오키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천재 메카닉 카무이. 

- 카무이는 자기가 만든 기계를 타고 유랑을 하던 참에 나오키를 만남. 카무이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기계에 빠삭함. 임기응변 능력도 상당히 좋고 나이에 비해 사고가 성숙한 편이라 혼자서도 어찌어찌 여행을 다니고 있음. 단점은 아무래도 애라서 성격이 좀 급하고 욱하는 게 많음. 처음 만났을 때, 여행을 떠날 무렵에는 나오키의 정체를 몰랐음. 그냥 힘 좀 세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음.

- 나오키는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감정이 격해지거나 자신이 원할 때는 용의 특성을 발현시킬 수 있음. 자기가 원할 때 발현시키면 제어가 완벽하지만,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잘 조절이 안 된다. 완전히 용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자기가 원한다고 특성의 발현을 멈출 수 없음. 완전한 용의 모습일 때 감정이 격해지면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 나오키는 용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 세계의 상식이 부족함. 말은 완벽하게 할 줄 안다.

나오키는 18세 정도. 카무이는 14-15세 정도.

- 샷건·블로우 / 스카이·하울 / 와일드·피스트 / 와일드·러쉬 / 빅뱅·너클 / 리세이 등 

모든 등장인물은 뱅가드 유닛의 이름을 인용한 것. 드래곤 엠파이어에도 소수지만 인간이 살고 있음. 유닛과 클랜의 설정은 원작과 다를 수 있음. 드래곤 엠파이어는 약간 옛날? 느낌?










― 혼자 힘으로 하늘을 나는 소년은 기계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소년을 만났다.




"블로우 녀석, 자기도 날개 있으면서 날 시켜먹다니."

 

  나오키는 산기슭에 다다르자 활짝 펴고 있던 날갯죽지를 접고 사뿐히 착지했다. 접힌 날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처음 날개가 돋았을 때는 스스로 꺼내고 사라지게 하는 것도, 꺼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툭하면 날다가 공중에서 떨어지거나 하루 종일 날개를 등에 꺼낸 채로 지내야 했는데, 이젠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의 성장에 잠시 뿌듯함을 느낀 나오키가 주위를 살폈다. 드래곤 외의 종족에게 인간이 용의 특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된다고 너클이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는 것은 습관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오키는 수풀을 헤치며 산기슭을 내려갔다. 블로우가 준 주문서가 제대로 주머니에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대체 뭐하는 물건일까?"

 

  굳이 인간에게 주문할 정도면 드래곤 엠파이어 안에는 없는 물건이라는 것일 텐데. 나오키의 목적지는 산기슭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산 맨 아래에 있으면서 전망대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였다. 개체수가 적고, 인간들의 입소문을 자주 타는 드래곤들은 폐쇄적인 경향이 강했다. 존재 자체가 눈에 띄고, 희소종인 드래곤을 노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한 몫 했다. 그래서 국가 단위의 외교를 제외하면 타 종족과 드래곤의 거의 모든 교류는 전망대에서 이루어졌고, 일부 인간들을 제외하면 드래곤 엠파이어 내의 타 종족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산기슭의 전망대는 인간들의 거주지인 유나이티드 생츄어리와 드래곤 엠파이어의 경계 역할을 하는 곳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어. 뭐야, 저건."

 

  풀숲을 헤치고 나가던 나오키는 반파된 기계를 발견했다. 풀숲 위에 흩어진 부품들과 잔뜩 그을린 기계 표면이 이 기계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밀렵꾼이 쓰고 버린 것인가 싶어 나오키는 기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서 본 기계는 덫이나 사냥도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낯선 기계를 훑어보던 나오키는 기계 밑에 깔린 소년을 발견했다. 소년은 정신을 잃은 채였다. 옷에는 풀물이 잔뜩 들었고, 드러난 맨살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했다. 짐승에게 당하기라도 한 건가. 나오키는 다친 인간을 눈앞에 두고 가버릴 정도로 매정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소년을 누르고 있는 기계를 치우고 소년을 안아올렸다. 

 

"여기 두고 가면 짐승들의 점심밥이 될 게 뻔하지."

 

  그는 소년을 쌀자루 옮길 때처럼 어깨에 들쳐맸다. 소년은 별로 무겁지 않았다-나오키가 보통 인간보다 힘이 세서 그렇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몰랐다-. 천천히 걷던 나오키의 눈에 전망대가 들어올 무렵, 어깨에 매고 있던 소년이 정신을 차렸는지 탁한 소리를 내며 기침을 했다. 콜록거리던 소년이 몸을 움직이자 나오키는 그를 땅에 내려놓았다. 막 정신을 차린 소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린 소년이 무릎과 엉덩이를 대강 털고 벌떡 일어섰다.

 

"아프잖아! 다짜고짜 내려놓으면 어떡해!"

"산짐승 먹이가 될 뻔한 걸 구해줬더니 도리어 화를 내네."

"……그, 그건…구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나오키의 반박에 소년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나오키를 찬찬히 훑어보던 소년은 이내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임을 안 나오키는 내밀어진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내 이름은 카츠라기 카무이야."

"난 나오키. 그런데 너, 왜 산기슭에서 그러고 있던 거야? 전망대보다 윗쪽은 드래곤 엠파이어의 영역이라 인간이 들어온 걸 들키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헉, 여기 드래곤 엠파이어의 영역이야? 생각보다 궤도가 틀어졌네…. 난 기계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기계가 공중에서 갑자기 고장나서 추락한 거야."

"여행? 너 같은 애가 혼자서?"

"애라니!! 이래 봬도 혼자 여행한지 벌써 2년째라고!!"

"그럼 네가 어른이냐?"

"…어른이라는 얘기는 안했어."

 

  나오키의 말에 발끈하던 카무이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오키는 큭큭 소리를 죽여 웃었다. 자신과 브로울러들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일이 잦은 나오키는, 오랜 세월을 살아 감정 조절에 능숙한 드래곤들과 말싸움으로 이기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런 자신보다도 더 금방 발끈하는 카무이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드래곤의 피가 섞인 존재가 맞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여행이라면, 유나이티드 생츄어리 쪽으로 가는 거야?"

"응. 주(ZOO)를 지나서 유나이티드 생츄어리를 한 바퀴 돌아보려고."

"주?"

"주에 사는 곤충들, 동물들, 식물들 중에는 드래곤보다는 못하지만 희귀한 것들이 많거든. 그걸 둘러보는 것도 재밌고, 그레이트 네이쳐라고 동물들이 세운 대학이 있는데 거기서 최신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배우느라 시간이 훌쩍 가버렸지 뭐야."

"동물들이 대학을? 동물에게 그 정도의 지식이 있단 말이야?"

"엥?! 그레네는 클레이 최고의 지성집단이잖아?! 그레네를 몰라? 전세계의 학생들이 앞다투어 거기로 유학 가려고 하는데. 세상의 흐름에 관심이 없어?"

 

  나오키는 '얘 대체 뭐하는 놈이지?' 라는 눈빛이 역력한 카무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본 동물들은 인간의 말도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는데, 카무이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자신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았다. 그레네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고. 나오키는 눈썹을 찡그렸다.


"난 드래곤 엠파이어 밖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 그렇지. 드래곤 엠파이어의 주민들은 다들 외부와의 교류를 선호하지 않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미안. 막 무시해서."

"아냐. 딱히 그런 건 신경 안 써."

"나는 스타 게이트 근처에서 살았어. 스타 게이트 알아? 음, 여기에서 꽤 많이 떨어진 곳이니까 모르겠네. 거기는 인간 말고도 안드로이드나 괴수, 외계인들이 많이 사는데 우주 경찰도 있고, 노바 그래플이라는 유명한 격투기 경기가 열리는 곳이야."

"노바 그래플…."

"보통 격투기가 아니라고! 진짜 흥미진진해! 그래서 그거 보려고 일부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

"그렇구나."

 

  고향 얘기를 하니 기분이 들뜨는지 주먹까지 말아쥐고 이야기를 하던 카무이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나오키는 상처 부위를 옷으로 덮는 카무이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문득 떠오른 말을 뱉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옷에 조금씩 피가 배어나오는 모양새를 보니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았지만, 카무이는 나오키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금방 나아. 하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또 떠날 거야?"

"으음, 아니. 일단 기계가 완전 고장나서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고. 가만 둬도 상처는 낫겠지만, 나으려면 쉬어야 하니까. 저 전망대 근처에 묵으려고."

"위험할텐데. 산에는 짐승들이 살아."

"괜찮아. 노숙은 익숙하거든."

"약이랑 음식 정도는 내가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진짜? 그럼 나야 무지무지 고맙지."

"……대신에, 또 놀러오면 그동안 네가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나오키가 머뭇머뭇 말하자 카무이는 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하려고 뜸 들인 거야? 킥킥거리며 웃은 카무이가 떠나기 전까지는 언제든 와. 하고 덧붙였다. 한층 화색이 밝아진 나오키가 잊어버리고 있던 심부름을 생각하고 카무이에게 작별을 고했다. 전망대를 향해 잰걸음으로 달리는 나오키의 머릿속에는 얼른 심부름을 끝내고 약과 음식을 챙겨 놀러갈 생각 뿐이었다. 현재의 생활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모자름이 없었던 나오키는 딱히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울 일도, 호기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그랬던 나오키에게 카무이가 이야기해주는 '바깥'의 이야기는 모두 새로웠다. 카무이가 앞으로 이야기해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로 그의 가슴이 뛰었다.

 

 

(중략)

 

 

  너클. 용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의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소년의 목소리-크게 소리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부르는 정도였다-가 용의 귀까지 닿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소년, 나오키는 특별했다. 브로울러의 이름을 가진 용 중에 나오키의 목소리를 놓치는 이는 없었다. 그가 브로울러와 인간의 피를 반씩 나눠가진 혼혈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나오키.」

"할 얘기가 있어서. 혹시 내가 쉬고 있는 걸 방해한 거야?"

「아니. 괜찮다. 할 얘기란 게 뭐지?」

"나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오고 싶어."

「이곳의 생활이 네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는가?」

"그런 거 아냐. 그냥, 바깥 세상의 문명을 접해보고 싶어졌어. 새로운 걸 보고, 듣고, 느끼고 내 견문을 넓힐 기회를 갖고 싶다는 거지."

「엠파이어를 떠나겠다는 뜻이로구나.」

"완전히 떠나겠다는 뜻은 아니야. 여기는 내 집이고, 너희는 내 가족이잖아. 내 여행의 종착지는 여기야. 다시 돌아올게."

「나오키.」

 

  용, 빅뱅·너클은 자신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나오키의 머리를 자신의 검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레이저(말소자)와 함께 드래곤 엠파이어를 양분하는 세력인 브로울러(싸움꾼)와 인간의 혼혈인 나오키는 태어날 때부터 드래곤들 손에서 자랐다. 드래곤은 태어난지 3년 정도면 거의 성체로 성장을 마치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노화와 성장이 굉장히 느려진다. 그런 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에게 있어서 성장이 느린 혼혈 아기가 기고, 걷고, 말하는 일련의 성장 과정은 희귀한 구경거리였다. 그 때문에 나오키의 행동 하나하나는 변화가 거의 없는 브로울러들의 삶에서 제일 큰 화젯거리이자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렇게 키워온 소년이 품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간다고 말하자 너클은 그제야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덤으로 쓸쓸하고 아쉬운 기분도 조금 맛보았다.

 

「그래. 내가 너를 막을 수 없지. 다녀오거라. 우리 브로울러는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너는 우리의 혈족이니까.」

"응. 고마워. 짐은 다 챙겼어. 리세이가 도와줬거든."

「준비가 빠르군. 너는 애초에 마음을 다 정하고 내게 보고하러 왔다는 뜻이구나. 사후보고냐.」

"너클. 피스트나 하울에게 쓸 것 같은 말투는 그만둬. 나는 네 부하가 아니라고."

「내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네가 충동적으로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어져서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모종의 계기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응. 그런 거지. 전에 블로우의 심부름을 갔다가 웬 인간 꼬마를 만났어. 그 녀석,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더라고. 녀석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모르는 세계의 일면이 궁금해져서. 녀석이 떠나기 전에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어. 걔도 괜찮다고 했고."

「혼자가 아니라니 조금 더 마음이 놓이는구나.」

"내가 인간을 못 이길 것 같아? 오히려 내가 걔를 지켜주는 거라고."

「인간 앞에서 용의 힘을 쓰지 말라는 말은, 잊지 않고 있겠지?」

"당연하지. 조심할게."

「다녀와라.」

"잘 있어, 너클!"

 

  너클로부터 등을 돌린 나오키가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더니 마음이 급한지 등에서 날개를 돋아나게 하고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갔다. 너클은 그 뒷모습을 예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는 제일 근처에 있는 스카이·하울을 불러 나오키가 가는 모습, 나오키가 말한 소년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울의 높은 웃음소리에 너클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웃지. 하울.」

「부모의 마음이야? 너클. 답지 않군.」

「너도 아쉬움이 역력한 목소리인데.」

「내가 쟬 등에 매달고 다니던 게 어제 같은데.」

「우리에겐 어제와 같은 거지.」

 

  너클은 육중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하울을 배웅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뭐 하나 부족하지 않게 키웠기 때문에 나오키는 야망도, 열정을 쏟을 일도, 호기심을 가질 것도 별로 없었다. 그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호기심에 빛나는 나오키의 눈을 보는 것도 좋았다고, 평생 왕국에 헌신하며 전장을 누볐던 늙은 용은 생각했다. 



(중략)



  카무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나오키라도 있었으면 좀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오키가 아무리 힘이 세고 발이 빠르다고 해도 어차피 인간인데 어쩌겠냐 싶기도 했다. 잠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도 해봤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 앞에서 자신이 무력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압도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했다. 앞발이 자신의 몸통만한 짐승이 내뱉는 뜨거운 숨이 코끝에 훅 끼쳐왔다. 카무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짐승의 발톱이 자신을 덮칠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짐승이 크르렁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생생히 들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카무이는 슬쩍 눈을 떴다. 짐승과 자신 사이에 불의 벽이 세워져 있었다. 어째 얼굴이 후끈하더라니 불이 나서 그랬구나. 불이…나…서…?

 

"으악!! 불!! 불!!"

"야, 너 안 죽어. 조용히 좀 해봐."

"불 났다고! 얼른 도망을…엥? 나오키?"

"그래. 나야."

 

  카무이가 나오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나오키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오키는 공중에 떠 있었다. 카무이는 불꽃이 내뿜는 화끈거리는 열기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입을 떡 벌리고 굳어버렸다. 카무이를 내려다보는 나오키의 탁한 겨자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일단 카무이를 구하고 보자는 의욕이 앞서서 저지른 일이지만, 카무이의 반응을 보니 너클이 신신당부하던 목소리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인간 앞에서 함부로 용의 힘을 보이지 마라.

 

'미안해. 너클.'

 

  카무이는 나오키에게 돋아나 있는 검붉은 날갯죽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날개는 새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수인이 이런 특별한 능력을 쓰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레이트 네이쳐의 현자들도, 메가 콜로니와 네오 넥타르의 수인, 총사들 중에 이런 능력을 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나오키는 드래곤 엠파이어에서 나간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카무이의 영특한 두뇌는 금방 답을 찾아냈다. 답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너…용이야?"

 

  나오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용과 인간의 혼혈이지."

 

  카무이는 그대로 뒤로 눕고 싶어졌다. 자신의 여행 친구는 상식이 모자란 인간이 아니라, 좀 더 골치아픈 존재였다. 나오키가 자신에게 정체를 숨긴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거면 철저하게 숨기던가 왜 대놓고 드러내는 건가 카무이는 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상황들을 다 정리할 수 없었다. 그래.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아. 옘병.



(중략)



「내가 무섭냐?」


  나오키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는 카무이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인간 앞에서 처음으로 용이 되어본 그는 알지 못했다. 용이 된 상태에서 인간에게 말을 걸어봐야 인간에게는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카무이는 제 앞에서 목을 울리며 그르렁거리는 용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책과 사람들의 입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던 환상종을 앞에 두고 평범한 인간인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나쁜 용, 아니 사람, 아니 용…은 아니었는데. 카무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면서도 울지는 않았다. 울음을 터뜨리는 게 부끄럽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울면 제 눈앞에 있는 용에게 자신이 그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정처없는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라고 카무이는 생각하고 있었다-였으니까 이대로 데면데면하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야 무섭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안 무서우면 그게 인간인가. 카무이는 뒷걸음질치다가 이내 주저앉아버렸다. 뜬금없이 용을 마주한 카무이만큼이나 나오키도 지금 이 순간이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상식은 부족했지만, 지혜는 부족하지 않았다. 카무이가 겁에 질려있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제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는 나오키도 무력했다. 겁주려고 했다는 게 아니란 제 뜻도 전할 수 없었고, 제 힘으로 변신을 풀 수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클에게 감정의 제어법을 더 잘 배워놓을 걸 그랬다. 애타는 마음은 땅을 기어갈 것처럼 낮은 울부짖음으로 바뀌어 공기를 울렸다. 카무이는 나오키가 인간 세상을 여행할 때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나오키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일단 카무이가 도망가지 않게 붙잡아놔야겠다는 마음에 나오키는 손을 뻗었다.


"에, 엑?!"

「해치지 않아. 잠깐만 얌전히 있으면….」


  물론 용의 커다란 발바닥이 제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카무이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 진짜 뭔데, 이게! 카무이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카무이의 몸 뒤로 쿵 내려앉은 발바닥에 이어 용의 육중한 몸이 카무이에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꼭 사자 손아귀 안에 들어온 다람쥐가 된 기분이었다. 날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머리를 돌돌 굴리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도달한 카무이는 슬슬 공포를 넘어 체념의 경지에 이르렀다. 어차피 제가 빠르게 도망친다고 해봐야 나오키가 팔 한 번 뻗으면 잡힐 것이 뻔했다. 그런 카무이의 머릿속을 알기나 하는지 나오키는 카무이를 한 팔로 감싸고 자리를 잡았다. 움직임이 잦아든 용을 향해 시선을 옮긴 카무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탁한 노란빛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느리게 눈을 꿈뻑거리는 모양새를 보자니 긴장이 절로 풀렸다.


"나 솔직히 엄청 놀랐고, 무섭기도 해."


  카무이의 말에 용이 눈을 깜빡이는 것만큼 느긋하게 울었다. 그 으르렁거림으로 용의 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카무이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누구나 미지의 생물을 보면 무서워하게 돼. 이건 본능 같은 거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좀 도망치고 싶었는데…. 나 해칠 생각 없지?"


  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위아래로 흔든 건지 좌우로 흔든 건지 올려다보는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카무이는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 같은 거 먹어봐야 네 위장에 기별이나 가겠어? 아니, 목에 기름칠은 하겠어?


"나오키 네가 무서워서 싫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냐. 딱히 신경쓰지 않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말해두는 거야. 도망 안 가. 우리 아직 산 너머 마을에 못 가봤잖아."


  나오키는 소년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제 팔에 기대어 앉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섭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조금 겁먹었는데, 도망가지 않겠다고 하자 다시 마음이 놓였다. 아직 우리 더 여행해야 하잖아. 소년의 말에 끓어오르던 감정이 좋은 의미로 차갑게 식었다. 나오키는 자세를 좀 더 편하게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둘 다 잔뜩 긴장한 탓에 긴장이 풀리고 나자 한순간에 피로가 밀려왔다. 제 팔이 벽이라도 되는지 기대서 잠든 카무이의 미미한 심장고동을 느끼며 나오키도 눈을 감았다.


  한참을 모래바닥에서 잠들었다가 깬 두 사람이 옷에서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생고생한 것은 조금 후의 일.



(중략)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졌다. 나오키는 등 뒤로 감추고 있던 팔을 그제야 가슴 앞으로 꺼낼 수 있었다. 반쯤 걷은 옷의 소매 사이로 보이는 맨살 위에는 검붉은 비늘이 드문드문 돋아 있었다. 나오키의 뒤에서 걸어나온 카무이는 마취총을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에 쑤셔넣었다. 


"아무데서나 발톱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용이라는 거 광고하려고 그래?"

"내가 처리했으면 한 방이었을 텐데."

"그러다 힘 조절 잘못하면 죽잖아. 내 마취총으로 처리하는 게 빨라."

"내가 용이라고 떠들어대면 어떡하려고."

"걱정마. 기억에 혼란을 주는 약물도 섞었으니까. 사람들은 다 저 사람이 미친 거라고 생각할걸. 애초에, 용이 무슨 가축이야? 이런 곳을 서성거릴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가자."

"그래. 좀만 서두르자."


  카무이가 갑자기 눈을 빛냈다. 나오키는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카무이가 눈을 빛내면 자기가 몸이 편할 일이 별로 없었다. 카무이가 나오키의 어깨부분을 가리켰다.


"지금 밤이니까, 나오키 네가 날개만 내밀고 날면 되잖아!"

"싫어."

"진짜 단호하네. 단호박이야?"


  카무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표정 지어도 소용 없는데. 나오키는 단호했다. 한 번 등에 태워준다고 네 날개가 닳냐?! 어?! 카무이의 신경질에도 나오키는 끄떡하지 않았다. 카무이는 신경질적으로 나오키의 정강이를 찼다. 물론 힘껏 찬 카무이의 발등만 아팠다. 무슨 몸이 이렇게 단단해. 화석이야? 한 300년 묵으면 몸이 화석이 되나?! 나오키는 뒤에서 카무이가 정강이를 까든 투덜거리든 앞서나갔다.


"한 번 태워준다고 날개가 닳냐고 이 300년 묵은 용가리야!"

"용가리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일족에게는 브로울러(싸움꾼)라는 명칭이 있는,"

"알았어. 싸움꾼아."

"내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시험해보고 싶지?"



(중략)



  나오키는 제 머리 위에서 달랑거리는 풍선을 보았다. 손을 뻗어도,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보아도 손이 닿지 않았다. 나무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풍선을 놓친 사람은 저 아이인듯 했다. 이럴 때 카무이가 있었다면 뭐라도 도구를 빌려달라고 했을 텐데. 제 옆에서 사고 치나 안 치나 감시하느라 바쁘던 카무이는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흐음. 아이와 풍선을 번갈아 보던 나오키가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뛰어나갈 것 같은 자세로 흐읍, 숨을 들이킨 나오키가 있는 힘을 다해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풍선을 낚아채고 약 0.5초 뒤에 육중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그 충격 속에서 풍선이 터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오키는 풍선을 아이에게 건넸다.


"자. 울지마."

"……어……."

 

  아이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나오키를 보고 있었다. 방금 자신이 한 행동들이 인간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라는 사실을 나오키가 알 리가 없었다. 그냥 평소보다 좀 더 힘있게 점프했을 뿐이니까.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나오키가 사람들을 눈으로 죽 훑었다. 그 다음 순간 귀에 쨍, 하고 높은 목소리가 박혔다.

 

"야!!!! 나오키!!!! 너 뭐하는 거야!!!!!"

 

  하나밖에 안 남은 간식을 나오키 손에 뺏겼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온 카무이가 나오키의 앞까지 다가와 그의 팔을 붙들고 잽싸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 와중에도 카무이는 나오키의 뒷모습에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아하하, 얘가 서커스단원이어서 몸이 좀 날렵해요. 하고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카무이가 숨을 조금 몰아쉬었다. 제 옆에 선 나오키는 난 착한 일을 했는데 왜 칭찬 안 해줘? 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 골이야…. 카무이는 일단 나오키의 등을 두세번 팡팡 두드렸다. 키가 작은 카무이는 나오키의 머리를 쓰다듬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칭찬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손으로 주먹을 꽉 쥐어 나오키의 옆구리를 퍽하고 때렸다. 억. 뼈를 찡하고 울리는 통증에 나오키가 얼굴을 찡그렸다.

 

"왜! 왜 때려!"

"미친 거 아냐! 왜 막 네 신체능력을 뽐내고 있어!"

"난 좋은 뜻에서 한 거라고!"

"알아! 근데 거기서 그렇게 펄쩍펄쩍 뛰고 있으면 저 인간이 아닙니다. 하고 광고하는 거랑 뭐가 달라! 보통 인간은 제자리에서 그렇게 못 뛰어!"

"아. 진짜?"

"넌 내가 그렇게 뛰는 거 봤어? 그렇게 뛸 수 있으면 기계가 왜 필요해."

"몰랐네."

 

  그늘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몰랐네, 하고 말하는 나오키를 보자 카무이는 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마음을 접었다. 애초에 얘는 인간이 아닌데 인간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잔소리해야 입만 아프지. 카무이는 나오키의 손을 꽉 붙들고 앉았다. 

 

"밥이나 먹자."

 

  그냥 밥이나 먹다 보면 답답한 마음도 없어지겠지. 카무이는 다음부터 절대 나오키를 혼자 두고 한눈을 팔지 않겠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후략)